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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전체를 잇는 주제

하나님을 더 알아 갈수록 바울은 자신을 더 작게 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오래 동행할수록 자신을 더 작게 보면서도, 받은 사명은 더욱 확신했습니다. 두 흐름은 그의 생애를 따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독자의 질문

바울은 나이가 들수록 더 겸손해졌나요?

네. 근거는 그가 직접 남긴 자기 묘사에 있습니다. 서기 54–55년경에는 자신을 사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라고 썼고, 서기 60–62년경에는 모든 성도 중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했으며, 생애 후반에는 현재 시제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표현했습니다. 비교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지만 부르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편지 전체에서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을 작게 보지 않았습니다

서기 33–34년경 젊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에게 돌을 던진 이들의 겉옷을 지키며 그의 죽음에 찬성했습니다. 그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 신자들을 체포하려고 집집마다 찾아다녔습니다.

약 30년 뒤, 지친 바울은 자신이 훈련한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두 문장 사이의 모든 것은 이 웹사이트가 추적하는 여정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 아라비아의 기간, 세 번의 긴 선교 여행, 폭동, 난파선, 로마에서 군인들이 지키는 집. 그러나 이러한 여정 아래에는 더 조용하고 보기 어려운 두 번째 여정이 있으며, 이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됩니다.

사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에베소, 서기 54–55년경)

바울이 에베소에 자리 잡았을 때에는 이미 약 20년 동안 복음을 전한 뒤였습니다. 구브로섬, 갈라디아 지방, 마게도냐, 헬라에 교회를 세웠고, 로마 총독 앞에서 자신의 사역을 변호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대에 가장 널리 여행한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가, 그곳에서 고린도 교회에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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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9–10 · 개역개정

문장 전체를 읽으면 단순한 자기비하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이 수고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성취를 자기 몫으로 돌리기를 거부합니다. 밖에서 보면 특별한 경력인 일이, 그에게는 은혜로 맡겨진 일로 보였습니다.

모든 성도 중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마, 서기 60–62년경)

5–6년 뒤, 로마에서 감시를 받던 시기의 편지로 전통적으로 이해되는 에베소서에서 같은 자기 묘사가 다시 나타납니다. 다만 비교 범위가 조용히 넓어집니다. 앞에서는 자신을 다른 사도들과 비교했지만, 이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비교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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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8 · 개역개정

문장은 자책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을 모든 성도 중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부르는 바로 그 문장에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작다는 인식과 맡겨진 사명의 크기는 그에게 서로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둘은 같은 은혜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서기 62–64년경)

생애 후반에 디모데에게 보낸 것으로 전해지는 편지에서는 비교의 원이 끝까지 넓어집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사도나 그리스도인과 비교하지 않고, 죄인 가운데 앞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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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15–16 · 개역개정

시제도 중요합니다. 수십 년 전 스데반이 죽던 때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였다고 과거형으로 쓰지 않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30년의 사역은 과거의 자신을 잊게 하기보다 그 모습을 더 분명히 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장은 정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훗날 자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세 표현을 나란히 놓으면 더 가혹해지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비교의 범위입니다. 사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 모든 성도 중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 죄인 중의 괴수. 뒤의 원이 앞의 원을 품으며 점점 넓어집니다.

작아지지 않은 것

이 흐름을 한 사람이 서서히 자신감을 잃은 과정으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편지에는 그와 함께 전혀 작아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시작부터 그의 사도직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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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1:1 · 개역개정

또 자신을 사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라고 소개했던 고린도의 독자들에게는 약 1년 뒤, 다른 이들보다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씁니다. 지위에 대한 확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낮은 평가를 한 문장에 함께 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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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11 · 개역개정

그는 다른 이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두 문장은 모순이 아닙니다. 은혜를 떠난 자기 평가는 계속 작아지지만, 맡겨진 사명에 대한 확신은 줄지 않습니다. 그의 겸손은 부르심을 얕보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부르신 분을 바라보는 태도였습니다.

위에 인용한 네 서신 가운데 에베소서와 디모데전서의 직접 저작은 논쟁 중이며 각 안내서에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 귀속을 사용하면서 논쟁을 숨기지 않습니다. 두 편지를 제외하면 증거 단계는 줄어들지만, 남는 자기 묘사의 방향은 같습니다.

이 흐름을 이야기에서 따라가 보세요

이 표현들은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쓰인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에서, 로마의 감시받는 집에서, 그리고 생애 마지막 무렵으로 전해지는 시점에서 각각 기록되었습니다. 문장마다 앞선 20년 또는 30년의 여정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장소와 사건을 따라 읽으면 말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첫 표현이 기록된 에베소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극장 소동과 마지막 항해, 먼바다의 난파를 지나 로마의 집까지 걸어가 보세요. 각 표현을 그가 기록한 시점과 장소에서 만나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바울은 정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불렀나요?

네. 이 표현은 저자 문제가 논쟁 중이며 이 사이트에도 그렇게 표시된 디모데전서에 나옵니다. 그러나 문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곧이어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 자기 묘사는 자기혐오를 위한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구원의 선언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바울의 겸손은 거짓 겸손이었나요?

편지 자체가 판단 기준을 줍니다. 자신을 낮추는 표현마다 은혜에 대한 고백이 이어집니다. 자신을 사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라고 부른 뒤에도, 오늘의 자신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약 30년 동안 자기 평가는 낮아지지만,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확신은 줄지 않습니다. 거짓 겸손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태도라면, 이 일련의 자기 묘사는 오히려 하나의 일관된 논증을 이룹니다.

바울은 겸손을 말하면서 왜 자랑했나요?

편지에서 자랑은 거의 언제나 마지못해 등장합니다. 고린도의 반대자들이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직접 밝히고, 매 맞은 일과 도피, 성벽에서 광주리로 내려간 일처럼 자신의 약함이 드러나는 경험을 자랑합니다. 기꺼이 하는 자랑은 오직 주님 안에서 하는 자랑이며, 이때 구약 예레미야서의 말을 인용합니다.

참고문헌과 출처

  1. 대한성서공회 공식 개역개정판 저작권 기록.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의 인용 본문은 CC BY 데이터 세트와 일괄 배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출처 보기
  2. 행과 각 서신을 교차 확인하고 논쟁 중인 연대를 표시한 이 프로젝트의 67개 항목 연대기입니다.
  3. 대한성서공회 공식 성경 읽기에서 제공하는 행 7–28장,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인용 본문은 CC BY 데이터 세트와 일괄 배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출처 보기
  4. Raymond E.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Doubleday, 1997).